대왕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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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왕 세종은 2008년 KBS에서 방영된 86부작 드라마이다. 조선 세종의 일대기를 다루며, 김상경, 김영철, 최명길, 이윤지 등이 출연했다. 제작 과정에서 지진희, 조재현, 이미숙 등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으나 최종 출연하지는 못했다. 드라마는 세종의 업적, 특히 한글 창제 과정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다루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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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작 배경 및 특징
《대왕 세종》은 조선 태종 시대부터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이다. 2008년 1월 4일에 제작 뒷이야기를 다룬 스페셜 방송이 있었으며, 2008년 11월 16일까지 총 86부작으로 방송되었다.
당초 조선 세종 역에는 지진희, 조재현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114], 성사되지 않았다. 이미숙이 원경왕후 민씨 역으로 낙점되었으나[115] 개인사정으로 고사했다.
편성은 당초 2007년 12월 첫 회가 나갈 예정이었으나 《대조영》의 연장에 따라[105] 2008년 1월로 변경되었다. 이후 KBS 2TV로 채널을 이동하면서 시청률이 하락했는데,[106] 주말 대하드라마 주요 시청자층인 40대 이상 남성들의 기호를 오판한 것이[107] 컸다. 방영 분량은 80부작에서 6회 연장되어 86부작으로 확정되었다.
2008년에는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베이징 올림픽 중계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결방되었다.
- 5월 31일: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한국 VS 요르단> 중계
- 8월 10일: <여기는 베이징> 축구 예선 <한국 VS 이탈리아> 중계
- 8월 16일: <여기는 베이징> 편성
- 8월 17일: 올림픽 관련 특보 편성
- 8월 23일: <여기는 베이징> 편성
2. 1. 기획 의도
KBS 대하드라마 중 하나로, 한국 방송계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이씨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다.[6] 셋째 아들로 태어나 왕위와 거리가 멀었던 충녕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과, 훈민정음 창제 등 새로 건국된 나라를 안정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그린다.[3] 극본은 윤선주와 김태희, 연출은 김성근과 김원석이 담당했다.[7]2. 2. 제작 과정
《대왕 세종》은 조선 태종 시대부터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이다. 한국 방송계에서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어 드라마화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6] 이씨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다.극본은 윤선주와 김태희, 연출은 김성근과 김원석이 담당했다. 제작비는 약 2000억원이며, 주조연 출연자는 70명 이상, 엑스트라는 2만 명 이상이 동원되었다.[7] 2007년 10월 9일(한글날)에 촬영이 시작되었다.[7]
당초 KBS 드라마 PD인 이성주 씨가 담당 PD로 낙점되었으나, KBS 드라마 2팀장으로 발령되면서[104] 연출자가 바뀌었다. 2008년 1월 4일에 제작 뒷이야기를 다룬 스페셜 방송이 있었으며, 2008년 11월 16일까지 총 86부작으로 방송되었다. 당초 80부작에서 6회 연장된 것이다.
2009년 대한민국 방송대상(한국방송대상) 장편 TV 드라마 부문과 비디오그래픽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고,[18] 윤회 역의 이원종과 소헌왕후 심씨 역의 이윤지가 2008년 KBS 연기대상 장편 드라마 부문 우수 연기상을 남녀로 각각 수상했다.[19]
2. 3. 드라마 특징
이 드라마는 조선 태종 시대부터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한국 방송계에서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어 드라마화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6] 이씨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KBS1에서 첫 방송 시 22%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나,[8] 같은 해 봄 개편에 따라 KBS2로 채널이 변경되면서[9] 시청률이 저조했다.[10]
이정현은 이선 역으로 출연하며 배우 활동을 재개했으나,[13] 성대 결절로 중도 하차했다.[14] 김명곤은 국립극장 극장장(2000년)과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06년) 취임을 위해 1999년 이후 중단했던 배우 활동을 재개했다.[15] 최명길이 《용의 눈물》에 이어 원경왕후 민씨 역으로 출연한 것도 화제가 되었다.[16][17]
2009년 대한민국 방송대상(한국방송대상) 장편 TV 드라마 부문과 비디오그래픽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고,[18] 이원종 (윤회 역)과 이윤지 (소헌왕후 심씨 역)가 2008년 KBS 연기대상 장편 드라마 부문 우수 연기상을 각각 수상했다.[19]
3. 주요 등장인물
3. 1. 왕실
다음은 드라마 대왕 세종의 왕실 관련 배역 및 등장인물 정보이다.[62][63][64]
어머니는 모두 소헌왕후이다.
3. 2. 조정 대신
드라마 《대왕 세종》에는 다양한 조정 대신들이 등장한다.[62][63][64] 이들은 세종을 지지하는 신왕파, 태종을 지지하는 구왕파, 그리고 그 외의 인물들로 구분된다.
3. 2. 1. 신왕파 (세종 지지)
3. 2. 2. 구왕파 (태종 지지)
3. 2. 3. 그 외 대신
3. 3. 기타 인물
쓰시마 원정 장면에 등장한다.
4. 역사적 배경과 사건
드라마 《대왕 세종》은 조선 태종과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3] 셋째 아들 충녕대군(훗날 세종)은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어린 시절 궁궐 밖 사저에서 생활하며 백성들의 삶을 경험한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며, 훈민정음을 창제한다.[3]
이 드라마의 PD는 원래 이성주 씨였으나, KBS 드라마 2팀장으로 발령되면서 연출자가 바뀌었다.[104] 또한, 2007년 12월 첫 방송 예정이었으나 《대조영》의 연장으로 2008년 1월로 변경되었다.[105] 이후 KBS 2TV로 채널을 옮겼으나 시청률이 하락했으며,[106] 40대 이상 남성 시청자들의 기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107]
쓰시마 원정 관련 인물은 다음과 같다.
4. 1. 국내 정세
태종 치세 하의 조선, 셋째 아들 충녕대군은 "책벌레"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학문을 좋아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0] 그는 외출 중에 우연히 소동에 휘말려 상인들이 궁핍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고, 신문고를 울려 태종에게 직소하지만 일축당하고, 오히려 측근이 고문을 받다 죽는 벌을 받게 된다.[20]조정 중신들은 충녕대군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 추방하려 하고, 숙부인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는 괴문서 사건을 일으켜 함정에 빠뜨리려 하지만, 충녕대군은 이를 간파한다. 결국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원경왕후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처형된다.[21]
수년 후, 충녕대군은 명나라 사신의 무리한 요구를 칙사와의 직접 교섭으로 해결하고,[22] 세자의 추문을 감싸거나,[23] 노비의 신분 회복을 위해 움직이는 등[24] 점점 더 왕재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세자는 이에 패배감을 느끼고, 원경왕후 역시 세자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충녕대군에게 위기감을 느껴 태종에게 그를 멀리 보낼 것을 진언한다.[25]
그러던 중 충녕대군이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이 고려 부흥 세력의 중심 인물인 옥환임이 밝혀진다. 태종은 고려 왕족이 성을 왕씨에서 바꿔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옥(玉)과 전(全, 田)이라는 성을 가진 모든 사람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26] 죄 없는 사람들이 고려 왕족과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것에 분노한[10] 충녕대군은 옥환과 직접 교섭을 시도하지만, 오히려 붙잡히고 세자에게 구출된다.[27] 충녕대군은 포박된 부흥 세력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비판하며 "왕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태종의 노여움을 사 북삼도로 유배된다.[10][28]
2년 후, 북삼도 경성에서 백성들의 신뢰가 두터운 동지의 장군 최윤덕이 파면되고, 도성에서 파견된 이천이 실권을 잡아 여진족을 도발한다.[29] 이를 계기로 세자는 북벌을 결의하고 태종 부부의 부재 시 독단으로 군을 움직여 북벌을 감행한다.[30] 경성에 나타난 세자를 충녕대군은 엄하게 비난한다.[31] 조정에서는 여진족을 도발하고 독단적으로 군을 움직인 세자의 책임 문제가 불거지고, 영의정 유정현은 "장자가 아니라 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발언한다.[31] 자포자기한 세자는 더욱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고, 태종은 세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는 것을 단념하고,[32] 충녕대군을 새로운 세자로 삼는다.[33]
충녕대군은 즉위하여 세종이 되지만, 즉위식 직후 군사권을 가진 상왕 태종이 대마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34] 태종은 더 나아가 정적을 제거하려 하고, 세종의 비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을 표적으로 삼아 반역자로 몰아간다. 세종은 고민 끝에 심온의 체포 명령을 내린다. 명나라에 특사로 파견되었던 심온은 "숙청은 내가 마지막으로"라고 결의하고 귀국한다.[35] 「반역자의 딸」이 된 소헌왕후를 폐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소헌왕후 본인도 왕후 자리를 내려놓을 결심을 하지만, 세종은 이를 만류한다.[36][37]
외교적 해결이 어려워지자 세종은 스스로 대마도 원정에 나선다.[38] 대마도 측은 세종 암살 계획이 실패하고,[39] 조선과 대마도를 저울질하던 규슈 측이 대마도 편을 들지 않으면서 열세에 놓인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재정적인 이유로 화해와 철수를 선택하여 정복을 원하는 태종과 일부 중신들을 억누른다.[40]
집중 호우로 인한 수해 등 문제가 끊이지 않자, 조말생은 국왕 탓이라며 세종을 책망한다.[41] 세종은 일식 날 의식을 거행하려 하지만, 일식이 일어나지 않아 입장이 더욱 위태로워진다. 조말생의 부정에 대해 집현전의 장관 박은이 조사를 시작하지만, 유정현의 요구도 있어, 집현전을 지키기 위해 세종은 박은을 파면한다.[42] 한편, 일식 예측을 조사하던 장영실은 명나라와 조선의 천문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세종은 조선 고유의 역법을 몰래 추진한다.[43]
귀국한 장영실을 세종은 천체 관측기 제작 책임자로 임명하려 하지만, 노비 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술자들과 관료들이 반발한다. 세종은 중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영실에게 관직을 부여한다.[44] 하지만 중신들의 반발에 장영실은 관직을 반환하려 하고,[45] 세종은 "500년 후의 조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인재다"라며 그를 감싸고, 그 모습을 본 중신들은 생각을 고쳐먹는다.[46]
여진족이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넘어오자, 이들을 받아들이려는 세종과 타 민족과의 혼혈을 싫어하는 조말생 등이 대립한다.[47] 도성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에 대해 "북방 민족의 방화가 원인"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도성 백성들이 북방 민족을 습격하기 시작한다.[48] 왕궁에 누명을 쓰고 도성 백성들의 표적이 된 북방 민족들이 몰려오고, 세종은 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49] 한편, 소동 속에서 부정으로 조말생이 유배형에 처해지지만,[50] 여진족의 공격에 대한 북방 원정 계획에 따라 세종에게 불려 돌아온다.[51]
같은 시기, 장영실 등이 발명한 '간의'로 수도 한성의 북위 측정이 성공한다.[52] 세종은 기밀을 두 왕자들에게 암기시키고 기록을 파기함으로써 지키려 하지만, 명나라와의 관계 악화를 두려워한 학자 최만리가 명나라에 기록을 넘긴다.[53] 이 일로 세종은 최만리에게 가혹한 인사를 단행하지만, 이에 반발한 세자는 신문고를 울려 내정 중시를 주장한다.[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