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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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왕 세종은 2008년 KBS에서 방영된 86부작 드라마이다. 조선 세종의 일대기를 다루며, 김상경, 김영철, 최명길, 이윤지 등이 출연했다. 제작 과정에서 지진희, 조재현, 이미숙 등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으나 최종 출연하지는 못했다. 드라마는 세종의 업적, 특히 한글 창제 과정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다루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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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세종 - [TV프로그램]에 관한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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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작 배경 및 특징
《대왕 세종》은 조선 태종 시대부터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이다. 2008년 1월 4일에 제작 뒷이야기를 다룬 스페셜 방송이 있었으며, 2008년 11월 16일까지 총 86부작으로 방송되었다.
당초 조선 세종 역에는 지진희, 조재현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114], 성사되지 않았다. 이미숙이 원경왕후 민씨 역으로 낙점되었으나[115] 개인사정으로 고사했다.
편성은 당초 2007년 12월 첫 회가 나갈 예정이었으나 《대조영》의 연장에 따라[105] 2008년 1월로 변경되었다. 이후 KBS 2TV로 채널을 이동하면서 시청률이 하락했는데,[106] 주말 대하드라마 주요 시청자층인 40대 이상 남성들의 기호를 오판한 것이[107] 컸다. 방영 분량은 80부작에서 6회 연장되어 86부작으로 확정되었다.
2008년에는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베이징 올림픽 중계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결방되었다.
- 5월 31일: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한국 VS 요르단> 중계
- 8월 10일: <여기는 베이징> 축구 예선 <한국 VS 이탈리아> 중계
- 8월 16일: <여기는 베이징> 편성
- 8월 17일: 올림픽 관련 특보 편성
- 8월 23일: <여기는 베이징> 편성
2. 1. 기획 의도
KBS 대하드라마 중 하나로, 한국 방송계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이씨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다.[6] 셋째 아들로 태어나 왕위와 거리가 멀었던 충녕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과, 훈민정음 창제 등 새로 건국된 나라를 안정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그린다.[3] 극본은 윤선주와 김태희, 연출은 김성근과 김원석이 담당했다.[7]2. 2. 제작 과정
《대왕 세종》은 조선 태종 시대부터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이다. 한국 방송계에서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어 드라마화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6] 이씨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다.극본은 윤선주와 김태희, 연출은 김성근과 김원석이 담당했다. 제작비는 약 2000억원이며, 주조연 출연자는 70명 이상, 엑스트라는 2만 명 이상이 동원되었다.[7] 2007년 10월 9일(한글날)에 촬영이 시작되었다.[7]
당초 KBS 드라마 PD인 이성주 씨가 담당 PD로 낙점되었으나, KBS 드라마 2팀장으로 발령되면서[104] 연출자가 바뀌었다. 2008년 1월 4일에 제작 뒷이야기를 다룬 스페셜 방송이 있었으며, 2008년 11월 16일까지 총 86부작으로 방송되었다. 당초 80부작에서 6회 연장된 것이다.
2009년 대한민국 방송대상(한국방송대상) 장편 TV 드라마 부문과 비디오그래픽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고,[18] 윤회 역의 이원종과 소헌왕후 심씨 역의 이윤지가 2008년 KBS 연기대상 장편 드라마 부문 우수 연기상을 남녀로 각각 수상했다.[19]
2. 3. 드라마 특징
이 드라마는 조선 태종 시대부터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한국 방송계에서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어 드라마화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6] 이씨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KBS1에서 첫 방송 시 22%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나,[8] 같은 해 봄 개편에 따라 KBS2로 채널이 변경되면서[9] 시청률이 저조했다.[10]
이정현은 이선 역으로 출연하며 배우 활동을 재개했으나,[13] 성대 결절로 중도 하차했다.[14] 김명곤은 국립극장 극장장(2000년)과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06년) 취임을 위해 1999년 이후 중단했던 배우 활동을 재개했다.[15] 최명길이 《용의 눈물》에 이어 원경왕후 민씨 역으로 출연한 것도 화제가 되었다.[16][17]
2009년 대한민국 방송대상(한국방송대상) 장편 TV 드라마 부문과 비디오그래픽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고,[18] 이원종 (윤회 역)과 이윤지 (소헌왕후 심씨 역)가 2008년 KBS 연기대상 장편 드라마 부문 우수 연기상을 각각 수상했다.[19]
3. 주요 등장인물
역할 | 배우 | 비고 |
---|---|---|
충녕대군 / 세종 | 김상경 | 아역: 김도현, 청소년: 이현우 |
태종 | 김영철 | 세종의 아버지 |
원경왕후 | 최명길 | 세종의 어머니 |
양녕대군 | 박상민 | 세종의 첫째 형, 아역: 정찬우, 십대: 이인 |
소헌왕후 | 이윤지 | 세종의 부인, 아역: 남지현 |
신빈 김씨 | 이정현 | 세종의 후궁 |
정통제 | 오승윤 | 아역: 김진성 |
황엄 | 고인범 | |
왕진 | 이대로 | |
황찬 | 김학철 | |
다연 | 정유미 | |
해수 | 하용진 | 황찬의 부하 |
여진 | 심우창 | |
왕안 | 김용수 | |
옥환 | 김명곤 | |
전행수 | 김승욱 | |
무비 | 정의갑 | |
전일지 | 문천식 | |
장칠상 | 최상길 | |
한영로 | 박용수 | |
평도준 | 배성우 | |
종 정성 | 장세진 | |
종준 | 서진원 | |
정우 | 박정우 | |
구주 장군 | 이종구 | |
이만주 | 신동훈 | |
맹가첩목아 | 방형주 | |
아우 | 함석훈 | 맹가첩목아의 형 |
김도련 | 이일재 | |
이선(상궁나인) | 이정현 | |
담이 | 차민지 | |
한상궁 | 김보미 | |
사또 | 조병기 | |
박겸 | 조민준 | |
풍개 | 강지후 | |
기생녀 | 원종례 | 장영실의 어머니 |
순흥 안씨 부인 | 안해숙 | 세종의 장모 |
이경숙 | 권성현 | |
오막지 | 선학 | |
이키시마의 수장 | 정종현 | |
통사 | 김선은 | |
야마타 | 김승훈 | |
장원 | 조재완 | |
어리 | 오연서 | |
이순지 | 김홍표 | |
퇴기춘월 | 설지윤 | |
강휘 | 이한갈 | |
노파 | 김지영 |
3. 1. 왕실
다음은 드라마 대왕 세종의 왕실 관련 배역 및 등장인물 정보이다.[62][63][64]역할 | 배우 | 작품 속 설정 등 |
---|---|---|
충녕대군/세종 | 김상경 아역: 이현우[65] | 본명 이도|이도중국어. 태종의 셋째 아들. |
소헌왕후 | 이윤지 아역: 남지현[65] | 세종의 정비. 심온의 딸. |
정종 | 노영국 | 조선 제2대 국왕. 상왕. 효령대군을 귀여워한다.[66] |
태종 | 김영철 | 조선 제3대 국왕.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성녕대군, 경녕군의 아버지. 충녕대군에게 양위 후 상왕이 됨. |
원경왕후 | 최명길 | 태종의 정비.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성녕대군의 어머니. |
세자/양녕대군 | 박상민 청년: 이준[65] | 본명 이제|이제중국어. 태종의 장남. 충녕대군의 형. 왕세자였으나 폐위됨. |
세자빈 | 유소영 | 세자/양녕대군의 정실. 김한로의 딸. |
효령대군 이보 | 성민 아역: 유태웅[67] | 태종의 차남. 충녕대군의 형.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41][68] |
성녕대군 이우 | 백승도 | 태종의 넷째 아들. 충녕대군의 동생. 홍역으로 14세에 사망. |
효빈 김씨 | 김성령 | 태종의 측실. 경녕군의 어머니. |
경녕군 이휘 | 윤영준 | 태종과 효빈 김씨의 아들. 충녕대군의 형. |
태조/이성계 | 정두홍[69] | 조선 초대 국왕. 세종의 할아버지. 회상 장면에 등장.[69] |
회안대군 이방간 | 김병춘 | (특별출연) |
양녕대군 이제 | 박상민 (어린 양녕대군 이제 : 정찬우, 소년 양녕대군 이제 : 이인) | |
수성부부인 광산 김씨 | 여윤정 (20대 시절 수성부부인 김씨 : 유서진) | 양녕대군 이제의 부인 |
예성부부인 해주 정씨 | 권성현 | - 효령대군 이보의 부인. |
신빈 김씨 | 이정현 | 세종의 후궁 |
계양군 이증 | 안경용 | 세종의 서자. 신빈 청주 김씨 소생. |
정선군부인 청주 한씨 | 김민좌 | 계양군 이증의 부인(한확의 딸, 인수대왕대비 한씨의 친정 언니) |
김원 | 강인기 | 신빈 청주 김씨의 친정 아버지, 계양군 이증의 외할아버지. |
삭녕 고씨 부인 | 서혜린 | 신빈 청주 김씨의 친정 어머니, 계양군 이증의 외할머니. |
어머니는 모두 소헌왕후이다.
역할 | 배우 | 작품 속 설정 등 |
---|---|---|
정소공주 | 주다영 | 세종의 장녀. 재생 불량성 빈혈[70]로 13세에 사망. |
문종 | 이상엽[71] 아역: 강비 | 본명 이향. 세종의 장남. 학구적이며 호기심이 많고, 성장 후 아버지의 조력자가 됨.[72] |
정의공주 | 이주현 | 세종의 차녀. 학구열이 높아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영향을 줌.[72] |
세조 (진양대군) | 서준영[73] 아역: 최민호 | 세종의 차남. 호방하고 쾌활하며 카리스마가 넘침.[72] |
안평대군 | 한시훈 아역: 강한별 | 세종의 삼남. 예술적 소양을 갖춰 문화 예술 전문가가 됨.[72] |
임영대군 이구 | 이재석 | 1450년 당시 32세. |
제안부부인 전주 최씨 | 전익령 | 임영대군 이구의 부인. |
귀성군 이준 | 안재성 | 임영대군 이구의 차남. 1450년 당시 10세. |
청하현주 이씨 | 김지원 | 임영대군 이구의 차녀. 1450년 당시 6세. |
순빈 하음 봉씨 | 여민주 | 세자 이향의 두 번째 부인. |
승휘 안동 권씨 | 강해인 | 세자 이향의 세 번째 부인이자 세손 이홍위의 생모. |
세손 이홍위 | 신동우 | 세자 이향의 외동아들. 1450년 당시 10세. |
역할 | 배우 | 작품 속 설정 등 |
---|---|---|
초궁장 | 강경헌 | 정종의 후궁이자 전직 기생. 세자와 밀통하여 소동을 일으킴.[23] |
어리 | 오연서 | 세자/양녕대군의 측실. 세자와의 관계가 문제시되어[74] 자결.[75] |
세자빈 | 여민주[76] | 이향의 정실(두 번째). 여종과의 동성애 관계가 발각되어 폐위. |
세자빈 | 이향의 정실(세 번째). 출산 후 사망. |
3. 2. 조정 대신
드라마 《대왕 세종》에는 다양한 조정 대신들이 등장한다.[62][63][64] 이들은 세종을 지지하는 신왕파, 태종을 지지하는 구왕파, 그리고 그 외의 인물들로 구분된다.
3. 2. 1. 신왕파 (세종 지지)
역할 | 배우 | 작품 속 설정 등 |
---|---|---|
황희 | 김갑수 | 실무 능력이 뛰어났다.[77] 충녕대군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여 관직에서 파면되어 추방당했지만, 사면되어 세종을 섬기며[78], 이후 영의정까지 출세했다. |
맹사성 | 안대용 | 활발한 성격으로 음악, 음운, 시에 능했다.[77] |
이수 | 조성하 | 효령대군, 충녕대군의 학문 스승. 민씨 형제의 괴문서 사건에서는 진상을 세자/양녕대군에게 알려 제자를 구했다.[21] 정계비(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북방 국경의 석비)를 발견했지만, 왕진의 명령으로 해수에게 살해당했다.[79] |
윤회 | 이원종 | 태종과 세종 양쪽 모두에게 신임을 받는 인물. 양자의 의견을 조율하여 대립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77] 술을 좋아해 투옥된 적도 있다.[77] |
정인지 | 이진우 | 집현전 소속 학자로, 모든 학문에 통달한 천재. 세종이 충녕대군이었을 때부터 교류가 있었으며, 즉위 후에도 훈민정음 제정에 기여했다.[77] |
최만리 | 이성민 | 집현전 소속. 훈민정음 제정에 강경하게 반대하며, 한때 세종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77] |
김종서 | 이병욱 | 세자/양녕대군의 측근을 자처하며 세종의 반대 세력이었지만, 세종의 북벌론에 찬성한 이후 충실한 신하가 되었다.[77] |
최윤덕 | 선동혁 | 무예에 뛰어난 무관. 소헌왕후 폐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 세종의 편에 서서 무력 제공을 자청했다.[36] |
신숙주 | 권세인 | 윤회의 사위.[80] |
신장 | 이달형 | 신숙주의 아버지. 세자의 세자사가 되어 아들 숙주와 왕자들의 인연을 맺게 된다.[81] 과로로 사망한다.[51] |
변계량 | 김영기 | 외교에 특히 뛰어난 학자. 예문관·집현전에서 수많은 학자들을 길렀다.[81]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심하여 아내를 심하게 다루어 면직될 뻔하기도 했다.[81] |
장영실 | 이천희 | 충녕대군 습격 사건에 사용된 무기를 만든 장본인.[26] 후에 용서받아 세종의 부하가 된다. |
이천 | 정현 | 과학자. 경자자·갑인자를 만들고 인쇄 기술 향상에 기여했다.[87] |
최해산 | 이대연 | 장영실의 스승. 제자와 함께 훈민정음 연구에 참여했지만, 추격자로부터 영실을 감싸다 절명한다. 사후 자신의 유체를 해부에 헌체한다.[88] |
신빈 김씨 | 이정현 | 조정에 섬기는 여관 (※ 하차[14]). 충녕대군/세종을 사모한다. |
3. 2. 2. 구왕파 (태종 지지)
배역 | 배우 | 작품 속 설정 등 |
조말생 | 정동환 | 태종 치세에 도승지를 맡았으나[81] 뇌물(수뢰)로 실각한다. 하지만 군사·병법에 밝아 조정에 복귀한다.[81] |
유정현 | 김기현 | 사려 깊고 합리적이지만 보수적인 면모도 보인다.[81] 택현론을 통해 태종에게 양녕대군 폐위를 건의했고,[31][82] 세종 치세에는 대마도 원정에서 삼군도통사로 활약한다.[81] |
허조 | 김하균 | 보수적이고 강경한 성격으로, 즉위 후 세종을 견제하지만 세종 치세에 제도 정비에 크게 기여한다.[81] |
김문 | 김정학 | 집현전 학자.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조말생의 부하로서 세종을 곤경에 빠뜨린다.[81] |
3. 2. 3. 그 외 대신
역할 | 배우 | 작품 속 설정 등 |
황희 | 김갑수 | 실무 능력이 뛰어나다.[77] 충녕대군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여 관직에서 파면되어 추방당하지만, 사면되어 세종을 섬기며[78], 이후 영의정까지 출세했다. |
맹사성 | 안대용 | 활발한 성격으로 음악, 음운, 시에 능하다.[77] |
이수 | 조성하 | 효령대군, 충녕대군의 학문 스승. 민씨 형제의 괴문서 사건에서는 진상을 세자/양녕대군에게 알려 제자를 구했다.[21] 정계비(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북방 국경의 석비)를 발견하지만, 왕진의 명령으로 해수에게 살해당한다.[79] |
윤회 | 이원종 | 태종과 세종 양쪽 모두에게 신임을 받는 인물. 양자의 의견을 조율하여 대립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77] 투옥된 적도 있을 정도로 술을 좋아한다.[77] |
정인지 | 이진우 | 집현전 소속 학자로, 모든 학문에 통달한 천재. 세종이 충녕대군이었을 때부터 교류가 있었으며, 즉위 후에도 훈민정음 제정에 기여했다.[77] |
최만리 | 이성민 | 집현전 소속. 훈민정음 제정에 강경하게 반대하며, 한때 세종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77] |
엄자치 | 윤기원 | 조정에서 일하는 내시로, 어린 충녕대군을 목숨 걸고 구한 인연으로 측근이 되었다.[77] 훈민정음 제정에도 기여했다.[77] |
김종서 | 이병욱 | 세자/양녕대군의 측근을 자처하며 세종의 반대 세력이었지만, 세종의 북벌론에 찬성한 이후 충실한 신하가 되었다.[77] |
최윤덕 | 선동혁 | 무예에 뛰어난 무관. 소헌왕후 폐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 세종의 편에 서서 무력 제공을 자청했다.[36] |
신숙주 | 권세인[80] | 윤회의 사위. |
조말생 | 전동환 | 태종 치세 하에서 도승지를 맡았다.[81] 뇌물(수뢰)로 실각하지만, 군사·병법에 밝음을 평가받아 조정에 복귀한다.[81] |
유정현 | 김기현 | 사려 깊고 합리적이지만 보수적인 면도 있다.[81] 택현론을 내걸고 태종에게 양녕대군을 세자 자리에서 폐위할 것을 진언했다.[31][82] 세종 치세 때 대마도 원정에 삼군도통사로 활약했다.[81] |
허조 | 김하균 | 보수적이고 기가 세며, 즉위 후 세종을 괴롭히지만, 세종 치세 하에서 제도의 정비에 크게 기여했다.[81] |
변계량 | 김영기 | 외교에 특히 뛰어난 학자. 예문관·집현전에서 수많은 학자들을 길렀다.[81]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심하여 아내를 심하게 다루어 면직될 뻔하기도 했다.[81] |
김문 | 김종학 | 집현전 소속 학자. 출생의 비밀을 품고 있다. 조말생의 부하로서 세종을 곤경에 빠뜨린다.[81] |
신장 | 이대연 | 신숙주의 아버지. 세자의 세자사가 되어 아들 숙주와 왕자들의 인연을 맺게 된다.[81] 과로로 사망한다.[51] |
하륜 | 최종원 | 조선 건국 전부터 섬겨 온 원로 대신이자, "좌 하륜, 우 (이)숙번"으로 불린 태종의 측근이자 지기[83]。 |
박은 | 박영지 |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운 공신. 반 세자파 = 친 세종파로, 세자/양녕대군이 초궁장 관련으로 소동을 일으켰을 때 세자파의 조정 추방을 꾀했다[84]。 |
심온 | 최상훈 | 소헌왕후의 아버지로 세종에게는 정치적 스승[83]。 세종 즉위 후 영의정이 되었으나, 명나라 체류 중 발언이 박은에게 밀고되어 역모죄로 다스려져 사사된다[83]。 |
강상인 | 전헌태 | 내금위 무관. 왕자 시절부터 태종을 도왔지만[83], 대마도 정벌 당시, 군사 기밀 누설을 군사권을 가진 태종이 아닌 세종에게 보고했기 때문에, 태종의 노여움을 사 옥사한다[85][86]。 |
김한로 | 최주봉 | 세자/양녕대군의 장인. 기생이었던 어리를 자택에 두고 후일 세자/양녕대군에게 소개했다[83]。 |
노희봉 | 황범식 | 태종을 섬기는 내관. |
민무구 | 김응수 | 원경왕후의 동생.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의 부하. 세자/양녕대군을 위해 충녕대군을 함정에 빠뜨리려 동생 민무질과 함께 괴문서 사건을 일으키지만, 당사자인 세자/양녕대군에게 엄벌을 요구받아 유배된 후 사사되었다[21]。 |
민무질 | 이경영 | 원경왕후의 동생. 형 무구와 함께 괴문서 사건에 연루된 죄로 유배되었고, 후에 형과 함께 처형된다. |
민무휼 | 김현일 | 원경왕후의 동생으로 정예 부대의 장. |
민무회 | 이우석 | 원경왕후의 동생. |
이숙번 | 김주영 | 태종의 부하.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지만, 그 전횡을 비난받아 유배된다[83]。 |
이종무 | 박상조 | |
장영실 | 이천희 | 충녕대군 습격 사건에 사용된 무기를 만든 장본인[26]。 후에 용서받아 세종의 부하가 된다. |
이천 | 정현 | 과학자. 경자자·갑인자를 만들고 인쇄 기술 향상에 기여[87]。 |
최해산 | 이대연 | 영실의 스승. 제자와 함께 훈민정음 연구에 참여했지만, 추격자로부터 영실을 감싸다 절명한다. 사후 자신의 유체를 해부에 헌체한다[88]。 |
신빈 김씨 | 이정현 | 조정에 섬기는 여관(※ 하차[14]). 충녕대군/세종을 사모한다. |
영락제 | 명나라 제3대 황제. | |
황엄 | 고인범 | 명나라 환관으로 칙사. |
해주 | 하용진 | 명나라 사신 중 한 명으로 황엄의 통역. |
왕진 | 동창의 일원. | |
영종 | 명나라 제6대 황제. |
3. 3. 기타 인물
배역 | 배우 | 작품 속 설정 등 |
장영실 | 이천희 | |
이천 | 전현 | |
최해산 | 이대연 | |
성조 | 정한헌 | |
한다연 | 정유미 | 한영로의 딸. 연실과 사랑하지만 명나라에 헌상되어 영락제의 측실이 된다. |
주고구 | 이병식 | |
영종 | 오승윤 | |
황엄 | 고인범 | |
왕진 | 이대로 | |
황찬 | 김학철 | |
해수 | 하용진 | |
육선재 | 윤갑수 | |
여진 | 심우창 | |
소청 | 윤효식 | |
임선미 | 유순철 | |
조의생 | 한태일 | |
왕안 | 김용수 | 고려 왕족의 생존자이며 고려 부흥 세력의 상징적인 존재[89]。 |
옥환 | 김명곤 | 본명은 왕명[89]. 고려 왕족의 생존자. 작품 속에서는 상단을 이끄는 거상[89]이며 고려 부흥 세력의 수괴. 왕궁 습격 당시 태종 앞에서 자결했다[90]。 |
전 행수 | 김승욱 | 옥환의 책사[89]이며 일지의 숙부. 본명은 반석[91]。조정 측에 붙잡힌 후 자결한다[28] |
무비 | 정의갑 | 옥환의 상단을 호위하는 무사. |
전일지 | 문천식 | 내시이며 엄자치와 친한 친구. 충녕대군을 감싸다 무비에게 참수되어 절명했다[90]。본명은 왕현[92]。 |
장칠산 | 최상길 | 최해산의 부하이며 고려 부흥 세력의 간자. |
한영로 | 박용수 | 고려의 지방 호족이며 부흥 세력의 일원[89]。 |
이만주 | 신동훈 | |
심타납노 | 김육룡 | |
임합라 | 강민석 | |
동맹가 | 방형주 | |
동범찰 | 함석훈 | |
토곤 | 조경호 | |
김도련 | 이일재 | |
이선(상궁나인) | 이정현 | 청년 충녕대군이 사적으로 마음에 두지만, 상궁나인 이선은 결국 풍질병(천연두)에 걸려[109] 죽음. |
함서환 | 김영필 | [110] |
담이 | 민지 | |
김사행 | 이병훈 | |
노희봉 | 황범식 | |
장원 | 조재완 | |
엄자치 | 윤기원 | |
오근 | 김용준 | |
한상궁 | 김보미 | |
사또 | 조병기 | |
박겸 | 주민준 | |
풍개 | 강지후 | |
기생녀(장영실의 어머니) | 원종례 | |
쇠귀할멈 | 김지영 | |
심온 부인 | 안해숙 | |
황엄의 여동생 | 황미선 | |
이경숙 | 권성현 | |
오막지 | 선학 | |
통사 | 김선은 | |
어리 | 오연서 | |
이순지 | 김홍표 | |
퇴기 춘월 | 설지윤 | |
강휘 | 이한갈 | |
백묘 | 신준영 | |
원정우 | 김영필 | [111] |
정동현 | 양기원 | [112] |
이키시마의 수장 | 정종현 | |
야마타 | 김승훈 |
쓰시마 원정 장면에 등장한다.
역할 | 배우 | 작품 속 설정 등 |
소 사다모리 | 장세진[93] | 쓰시마의 수호대 |
겐 도치카 | 규슈 탐제 | |
헤이 도젠 | 배성우[94] | 일본 측이 조선에 보낸 간자. 후, 조선에 귀화한다 |
헤이 보코 | 곽승남[95] | 헤이 도젠의 아들. 아버지와 함께 조선에 귀화한다. |
4. 역사적 배경과 사건
드라마 《대왕 세종》은 조선 태종과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3] 셋째 아들 충녕대군(훗날 세종)은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어린 시절 궁궐 밖 사저에서 생활하며 백성들의 삶을 경험한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며, 훈민정음을 창제한다.[3]
이 드라마의 PD는 원래 이성주 씨였으나, KBS 드라마 2팀장으로 발령되면서 연출자가 바뀌었다.[104] 또한, 2007년 12월 첫 방송 예정이었으나 《대조영》의 연장으로 2008년 1월로 변경되었다.[105] 이후 KBS 2TV로 채널을 옮겼으나 시청률이 하락했으며,[106] 40대 이상 남성 시청자들의 기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107]
쓰시마 원정 관련 인물은 다음과 같다.
역할 | 배우 | 작품 속 설정 |
---|---|---|
소 사다모리 | 장세진[93] | 쓰시마 수호대 |
겐 도치카 | 규슈 탐제 | |
헤이 도젠 | 배성우[94] | 일본 측 간자, 훗날 조선에 귀화 |
헤이 보코 | 곽승남[95] | 헤이 도젠의 아들, 아버지와 함께 조선에 귀화 |
4. 1. 국내 정세
태종 치세 하의 조선, 셋째 아들 충녕대군은 "책벌레"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학문을 좋아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0] 그는 외출 중에 우연히 소동에 휘말려 상인들이 궁핍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고, 신문고를 울려 태종에게 직소하지만 일축당하고, 오히려 측근이 고문을 받다 죽는 벌을 받게 된다.[20]조정 중신들은 충녕대군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 추방하려 하고, 숙부인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는 괴문서 사건을 일으켜 함정에 빠뜨리려 하지만, 충녕대군은 이를 간파한다. 결국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원경왕후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처형된다.[21]
수년 후, 충녕대군은 명나라 사신의 무리한 요구를 칙사와의 직접 교섭으로 해결하고,[22] 세자의 추문을 감싸거나,[23] 노비의 신분 회복을 위해 움직이는 등[24] 점점 더 왕재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세자는 이에 패배감을 느끼고, 원경왕후 역시 세자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충녕대군에게 위기감을 느껴 태종에게 그를 멀리 보낼 것을 진언한다.[25]
그러던 중 충녕대군이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이 고려 부흥 세력의 중심 인물인 옥환임이 밝혀진다. 태종은 고려 왕족이 성을 왕씨에서 바꿔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옥(玉)과 전(全, 田)이라는 성을 가진 모든 사람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26] 죄 없는 사람들이 고려 왕족과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것에 분노한[10] 충녕대군은 옥환과 직접 교섭을 시도하지만, 오히려 붙잡히고 세자에게 구출된다.[27] 충녕대군은 포박된 부흥 세력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비판하며 "왕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태종의 노여움을 사 북삼도로 유배된다.[10][28]
2년 후, 북삼도 경성에서 백성들의 신뢰가 두터운 동지의 장군 최윤덕이 파면되고, 도성에서 파견된 이천이 실권을 잡아 여진족을 도발한다.[29] 이를 계기로 세자는 북벌을 결의하고 태종 부부의 부재 시 독단으로 군을 움직여 북벌을 감행한다.[30] 경성에 나타난 세자를 충녕대군은 엄하게 비난한다.[31] 조정에서는 여진족을 도발하고 독단적으로 군을 움직인 세자의 책임 문제가 불거지고, 영의정 유정현은 "장자가 아니라 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발언한다.[31] 자포자기한 세자는 더욱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고, 태종은 세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는 것을 단념하고,[32] 충녕대군을 새로운 세자로 삼는다.[33]
충녕대군은 즉위하여 세종이 되지만, 즉위식 직후 군사권을 가진 상왕 태종이 대마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34] 태종은 더 나아가 정적을 제거하려 하고, 세종의 비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을 표적으로 삼아 반역자로 몰아간다. 세종은 고민 끝에 심온의 체포 명령을 내린다. 명나라에 특사로 파견되었던 심온은 "숙청은 내가 마지막으로"라고 결의하고 귀국한다.[35] 「반역자의 딸」이 된 소헌왕후를 폐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소헌왕후 본인도 왕후 자리를 내려놓을 결심을 하지만, 세종은 이를 만류한다.[36][37]
외교적 해결이 어려워지자 세종은 스스로 대마도 원정에 나선다.[38] 대마도 측은 세종 암살 계획이 실패하고,[39] 조선과 대마도를 저울질하던 규슈 측이 대마도 편을 들지 않으면서 열세에 놓인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재정적인 이유로 화해와 철수를 선택하여 정복을 원하는 태종과 일부 중신들을 억누른다.[40]
집중 호우로 인한 수해 등 문제가 끊이지 않자, 조말생은 국왕 탓이라며 세종을 책망한다.[41] 세종은 일식 날 의식을 거행하려 하지만, 일식이 일어나지 않아 입장이 더욱 위태로워진다. 조말생의 부정에 대해 집현전의 장관 박은이 조사를 시작하지만, 유정현의 요구도 있어, 집현전을 지키기 위해 세종은 박은을 파면한다.[42] 한편, 일식 예측을 조사하던 장영실은 명나라와 조선의 천문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세종은 조선 고유의 역법을 몰래 추진한다.[43]
귀국한 장영실을 세종은 천체 관측기 제작 책임자로 임명하려 하지만, 노비 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술자들과 관료들이 반발한다. 세종은 중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영실에게 관직을 부여한다.[44] 하지만 중신들의 반발에 장영실은 관직을 반환하려 하고,[45] 세종은 "500년 후의 조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인재다"라며 그를 감싸고, 그 모습을 본 중신들은 생각을 고쳐먹는다.[46]
여진족이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넘어오자, 이들을 받아들이려는 세종과 타 민족과의 혼혈을 싫어하는 조말생 등이 대립한다.[47] 도성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에 대해 "북방 민족의 방화가 원인"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도성 백성들이 북방 민족을 습격하기 시작한다.[48] 왕궁에 누명을 쓰고 도성 백성들의 표적이 된 북방 민족들이 몰려오고, 세종은 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49] 한편, 소동 속에서 부정으로 조말생이 유배형에 처해지지만,[50] 여진족의 공격에 대한 북방 원정 계획에 따라 세종에게 불려 돌아온다.[51]
같은 시기, 장영실 등이 발명한 '간의'로 수도 한성의 북위 측정이 성공한다.[52] 세종은 기밀을 두 왕자들에게 암기시키고 기록을 파기함으로써 지키려 하지만, 명나라와의 관계 악화를 두려워한 학자 최만리가 명나라에 기록을 넘긴다.[53] 이 일로 세종은 최만리에게 가혹한 인사를 단행하지만, 이에 반발한 세자는 신문고를 울려 내정 중시를 주장한다.[54]